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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르 전쟁/전개/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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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여기로 가면 되잖아 ==== 개전 1년이 다되가는 이쯤에서 마베라, 웨스타시아 국민들뿐만 아니라 이 전쟁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무언가 한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것은 개전 초부터 있었지만, 무언가 다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니라는양 넘어간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의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베라와 웨스타시아의 전선 형태를 다시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전쟁 같은 평범한 남-북간의 전선배치와는 달리 마베라-웨스타시아간의 국경지대에는 높이로만 세계 10위권 안에드는 거대하고 험준한 몬타나 산맥이 동서로 크게 자리잡고 있어 중부로의 타격이 사실상 불가.[* 공군으로의 타격은 한랜드군쪽에서도 몇번 시도해본적이 있었지만, 마베라군이 이를 예측하고 산맥 너머에 미리 어마어마한 방공망을 건설해놨었기에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오직 서쪽 끝의 에스타뉴 회랑과 해안지대 or 동쪽 끝의 토브룩 회랑으로만 타격이 가능한 매우 괴이한 전선배치를 자랑했다. 때문에 웨스타시아 측에서 마베라를 타격 가능한 루트는 실상 두개였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웨스타시아군은 토브룩 회랑을 돌같이 보고, 마베라의 거의 모든 군사적 자원이 모여있는 서부전선에만 병력을 집중해 ㄷ자 모양의 전선배치를 만들었다. 마테르전의 괴이한 전선배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여기에 있었다. "왜 동쪽은 안감?" 하지만 웨스타시아가 아무리 개판난 군대일지언정, 무능한 군대는 아니었기에 웨스타시아 군에도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1. 문제의 토브룩 회랑은 크고 알흠다운 몬타나 산맥을 끼고있는 지형으로, 깎아지른 절벽 사이사이에 지하 공군기지 열댓개가 포진해있는 악마같은 방공망을 자랑한다.[* 대부분 옛 전쟁 당시 한랜드로 패주하던 독일군이 동쪽으로 쳐들어오던 연합군을 막으려고 건설한 것들이다. 건설한 넘의 이름을 따와서 '롬멜 벙커'라는 통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다...] 때문에 웨스타시아의 주력인 공군력 투입이 봉쇄됨은 물론이고 공수부대를 사용한 작전도 불가능하다. 2. 따라서 토브룩 회랑을 넘어 마베라 서부를 치려면 육상전력으로 쳐야하는데 대부분의 병력이 서부전선 치느라 바쁜건 둘째치고 지형 자체가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라 한랜드군 특유의 기갑웨이브 전술도 쓰기 매우 어렵다. 3. 결론적으로 놓고보면 실상 보병침투가 강제되는 지형이다. 하지만 이쪽도 등산이라는 행위 자체가 여간 빡쎈게 아니기에 어마어마한 장병들의 희생을 요한다. 우선 서쪽의 고지대는 몬타나 산의 한기가 직격으로 내려와 극히 춥고 경사가 너무 깊어 도로도 마을도 토브룩이 거의 유일. 수송차량도 굴리기 힘들어 2차대전 시절에 마지막으로 썼던 말을 보급에 써야하는등 밥줄도 개판이다. 그렇다고 바로 옆의 저지대[* '아우주 사막(Aouzou Desert)'이라 불리기도 한다.--아우주에 나가있는 것처럼 지옥같은 곳이라 그렇다 카더라]로 가자면 거긴 또 사람하나없는 최악의 무인지대이자 넓은 사막이라 찌는듯한 더위와 갈증에 시달려 그냥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한마디로 토브룩 회랑은 전투는 커녕 등산 전문가도 통과가 힘든 인외마경이었기 때문에 이 은색작전은 입안과 동시에 퇴짜를 맞고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묻혀있었다. 이는 1983년의 웨스타시아군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분명 더 쉬운길이 눈앞에 보이는데 굳이 공군도 전차도 못굴리고 병력만 다 죽어나가는 힘들고 괴악한 길을 왜 가겠는가. 하지만 1984년의 한랜드군은 좀 상황이 달랐다. 에스타뉴 산맥쪽의 서부전선은 완전히 밀려 본토가 야금야금 먹히는 수준이 됐고 육군 해군 공군 모두 사이좋게 박살이 난데다 경제제재에 의해 나라 자체가 아사당하고 있어 최대한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쟁 전부터 앓고있던 정신질환이 심화되어 '전쟁을 끝낼 한방'에 집착하던 연방대통령에게, 동부전선은 꽤나 솔깃한 카드였다. 일단 시골마을 두개와 소도시만 넘으면 마베라의 후방 중 후방[* 토브룩 회랑은 상술했듯 예로부터 극오지에 속하는 곳이라 롬멜 벙커 등의 방공 시설을 제외하면 양측 모두 아무런 방어시설도 없는 곳이었다. 특히 롬멜 벙커는 당시 독일군 내부에서도 낭비라는 여론이 대다수였고 마테르 전쟁 이전까진 주류 역사학자들도 추축국의 북랜드 전선 패배의 원인을 롬멜벙커의 인력낭비로 뽑았던 수준이었다. ]이라 기습해서 전쟁 극초기에 기획했던 빠른 기습 & 종전협상 전략을 사용할수 있고, 특히 적은 병력 침투로도 큰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은 전차고 인력이고 다 박살나서 없던 당시 한랜드군에겐 매우 솔깃한 장점이었다. 그렇게 1984년 1월 1일, 새해를 맞음과 동시에 앨빈 C. 요크 련방대통령은 은색작전 계획을 재가했고, 최전선에 학도병을 갈아넣어 시간을 버는 동시에 토브룩 공격에 대한 대대적인 밑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작전의 성공을 위해선 제공권, 적어도 공습을 안받을 정도의 고요한 하늘이 필요했다. 한랜드 3군 중에서 그나마 기력이 남아있던 루프트바페(공군)는 이를 위해 마지막 기력을 짜내 마베라 공군을 위한 최후의 훼이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84년 1월 13일, 몬타나산 중부에 건설차량 행렬이 관측된것을 시작으로 2월 초까지 셉티미우스시 북부엔 거대한 비행장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셉티미우스 시는 몬타나산 중남부의 마베라측으로 살짝 들어간 지형에 위치해있는 중소도시로, 마베라 본토와도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비행장을 지으면 실상 마베라를 공습 하이웨이가 뚥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웨스타시아 정보국이 이곳에 한랜드의 핵시설이 위치해있다는 구라를 마베라측에 흘려보냈기 때문에 마베라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재로 만들어야하는 도시나 다름없었다[* 루이나는 이당시 마베라에 해당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마베라 정보부는 루이나가 잘못 제공햔 정보로 뱅가지 상륙전에서 큰 피해를 보고 난 이후로 루이나 정보부를 무시했고.....] 그렇게 84년 2월 10일 새벽 마베라 공군력의 대부분을 긁어모은 어마어마한 폭격 전대가 전국 각지의 비행장을 이륙했고, 그들은 일제히 셉티미우스시 비행장으로 향했다. 워낙 그들의 물량이 막대했기 때문인지 무엇인진 몰라도, 수비군은 산맥 넘어로 넘어오는 항공기들을 보자마자 기지를 버리고 도주했고 방공망은 물녹듯이 녹아 그날 오전 8시까지 1,2,3 활주로가 초토화. 모든 이글루가 폭격당하고 주기장에 있던 항공기들도 전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너무 빨리 퇴각한 수비군, 허술하다못해 없는 수준인 방공망, 주기장에 아무런 지상병력이 없는점..... 모두가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그때, 황색 편대 8번기 조종사 하프타르 대위가 파괴된 항공기들이 사실 그럴싸하게 만든 풍선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쪽과 동쪽에서 웨스타시아군이 꽁꽁 숨겨왔던 비밀병기 FB-88 파이어볼트 산탄 미사일 44발이 날아왔다. 그렇다. 모오든것이 훼이크였던 것이다. 천문학적인 단가와 공업력 멸망이슈로 한랜드군도 딱 44발밖에 생산하지못한 그 신묘한 순항미사일은, 산탄 미사일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나당 88개의 자탄을 탑재해 공중의 다수 타겟을 쓸어버리는 막강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산탄들의 유도장치에는 2 color 추적기술과 튜링 시스템을 넣은 영상유도장치를 적용해, 플래어나 채프를 아무리 쏴도 적들이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리는 막강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시대 시절 오다 노부다가가 관서지방의 막대한 경제력으로 총포를 장만해 전쟁에서 이겼듯, 돈지랄의 결과는 성공이었다. 44발의 산탄미사일만으로 성층권에 있던 루이나의 B-52[* 루이나가 이때 개빡쳤던것이, 1980년대 당시 B-52의 가격은 약 5,400만 달러였고, 루이나 공군에도 예산 이슈로 28대 밖에 배치되지 않은 당대 최강의 폭격기였다.]와 호위기들은 전멸해버렸고, 몬타나산 너머로 돌아갈 길이 차단되어 버렸다. 잔존 편대들은 성층권의 미사일들을 피하기 위해 오목한 셉티미우스시 상공으로 저공 비행을 시도했지만, 그들이 저공으로 내려오자마자 본것은 벙커에서 유유히 빠져나온 자주대공포들과, 남쪽에서 날아온 웨스타시아 공군의 80% 전력뿐. 그렇게 하루아침에 마베라 공군은 전체 전력의 절반을 상실하고 말았다. 셉티미우스 공중전으로 반년만에 승기를 잡은 한랜드군은, 토브룩으로 갈 마베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남은 기력을 모조리 쥐어짜 마지막 대공세를 시작했다. 제공권을 약간이나마 먹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2월 11일 김용하 장군 휘하의 6군이 오말라스 전투에서 승리해 마베라의 동쪽으로 깊숙히 들어간 돌출부를 절단. 내부의 21만 병력을 고립시켰고 29일엔 12만 학도병들의 목숨을 대가로 제1차 칼펜슈타인 공방전에서 승리해 영토의 절반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망한 군대는 망한군대라 그 이상으로 가는건 무리였으므로 한랜드 육군은 칼펜슈타인-오말라스-키레네를 잇는 K-K라인을 건설한뒤, 한랜드 육군을 싹싹 긁어모아 토브룩 공략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군부의 그 누구도 이것이 이 전쟁을 통틀어서 가장 끔찍한 비극의 시작이 될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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